작성일 : 14-01-03 00:26
아들의 혼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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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이재옥
조회 : 1,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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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혼서지(婚書紙)
아들의 혼서지를 쓰느라 얼마나 열중했는지 나중엔 바위가 깨지듯 골이 아팠습니다. 달포 전부터 아내는 혼서지 글씨를 연습하라고 빈대가 되어 잔소리했습니다. 드디어 오늘 오후 아내가 쇼핑몰에 간 사이 선풍기를 최대로 켜 놓고 혼서지를 썼습니다.
결혼이 성사되는 마지막 단계에 예로써 신랑 측 아버지가 신부 댁에 보내는함속에 넣어 보내는 것이 혼서지(婚書紙)입니다. 신부에게 일부종사(一夫從事)의 의미가 있는 혼서지는 죽어 무덤에 까지 가지고 가는 귀중한 물건이라 합니다.
나는 아내를 만나고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이 한 달 만에 머슴 결혼하듯 했습니다. 아내와 나는 결혼이란 모름지기 마음과 마음의 만남이 중요하므로 이하 모든 번거로운 절차는 생략해도 무관하다는 것이 피차의 입장이었습니다. 그러니까 혼서지가 있는 줄도 몰랐고, 심지어는 신부 집에 함도 보내지 않았습니다.
아들은 나와 30년의 시차를 두고 미국에서 결혼하면도 혼서지를 쓰게 되었습니다. 아들은 한국과 한국의 전통에 대한 애착이 나보다 열 배나 많습니다. 그는 그렇게 함으로써 정체성을 애써 찾으려는 듯합니다. 일면 대견하고 때로는 눈물도 날 지경입니다.
늦게까지 장가도 못 들다 어느 마음씨 너그러운 집에서 신부를 허락하니까 호박이 굴러 떨어진 듯 우리 아들은 매일같이 기분이 좋습니다. 요즘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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