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4-01-03 00:28
결혼식 인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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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이재옥
조회 :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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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결혼식 피로연에서 신랑의 아빠되는 사람에게 한 마디 하라고 해서 한 마디 한 내용입니다. 미리 적어간 것을 읽은 것입니다. 나중에는 슬그머니 감정에 복받쳐 말도 더듬거리고 울먹이게 되었습니다. 남자답지 못한 행동이었습니다.
결혼식은 MIT 캠퍼스에 있는 채플에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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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 인사말
안녕들 하십니까? 반갑습니다. 준이 아빠 되는 사람입니다. 우리 아들과 제가 좀 비슷하게 생기지 않았나요? 이마가 넓은 게 그렇지 않습니까?
무엇보다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미국의 동북지방 끝까지 달려와서, 준이와 승진이의 결혼을 축하해 주신 것에 대해 하객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특히 지구의 반 바퀴를 더 돌아 한국에서 오신 양가 친인척, 형제분들에게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뜨거운 가족애와 형제애를 느끼게 됩니다. 여러분들은 메이플라이어 호를 타고 미국에 왔던 그 먼 날의 청교도들보다 더 어렵고 먼 길을 오신 것이라 생각합니다.
제가 결혼한 것이 1981년 8월이니까 지금까지 꼭 32년의 세월이 흐른 셈입니다. 저의 결혼과 준이의 결혼을 기준으로 따진다면 한 세대가 바뀌게 된 것입니다.
준이가 태어나던 날 나는 산모실에서 준이가 태어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얼굴을 바닥 쪽으로 돌리고 최초의 햇빛 속으로 기어 나왔습니다. 두 개의 방울을 흔들며 ET처럼 기어 나왔습니다.
어른의 한 뼘 반 정도밖에 안 되던 그날의 피투성이가 이렇게 크게 자라서, 한 아가씨를 만나고 백년의 약속으로 가정을 꾸리게 되다니 감개가 무량할 뿐입니다.
미국에 살고 있는 한국인 2세의 총각들은 한국인 2세의 아가씨들보다 한국 사람을 짝으로 만나 결혼하기가 서너 배는 더 어렵다고 얘기합니다.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준이는 예쁘고 재주가 많은 한국 오리지날의 규수를 만나 장가를 갈 수 있게 되어 참으로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거액의 잭팟이 터진 것과 같이, 호박이 넝쿨 채 굴어든 것과 같이 아주 기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나는 준이가 장가들고 난 뒤에도 계속하여 착한 심성을 가졌으면 하는 그런 바램을 가지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고 가여워하는 자비의 정신으로 이 세상을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아내에게는 진실하고 착한 목동의 손을 가진 남자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 나의 소원입니다. 기르는 양들은 내 몸처럼 아끼고 사랑하는 그런 목동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신현림이라는 시인의 ‘꿈꾸는 누드’라는 시가 있습니다. 그 시의 주인공은 다음과 같이 노래하고 있습니다.
“이 남자 저 남자 아니어도
착한 목동의 손을 가진 남자와 지냈으면
그가 내 낭군이면 그를 만났으면 좋겠어
..................
새 아침을 맞으며
베란다에서 새들의 노랫소리를 듣고
승강이도 벌이면서 함께 숨 쉬고 일하고
당신을 만나 평화로운 양이 됐다고 고맙다고
삼십년을 기다렸다고 고백하겠어“
이상이 시의 주요 내용입니다. 이와 같이 준이도 착한 목동의 손을 가진 남자로서, 승진이로부터 삼십년을 기다렸다는 고백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이야기가 길어져서 죄송하게 됐습니다. 다시 한 번 준이와 승진이의 결혼식에 와 주신 여러분들에게 진정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어느 누구도 예외 없이 차려진 음식과 다과를 마음껏 즐기시고, 준이와 승진이 에게 덕담도 아낌없이 건네면서 많이많이 축복해 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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