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게는 누구나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그것은 타고난 본능입니다.
그러기에 친구 사이라도 특별 대우를 받으면 마음이 뿌듯해집니다.
식당이나 상점도 더 나은 친절로 대해 주면 그곳을 자주 찾게 됩니다.
그만큼 자신을 알아주는 이에게는 호감을 갖기 마련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어느 바리사이의 집에 초대받아 식사하십니다.
그런데 자리 때문에 난감한 상황이 벌어집니다. 서로 윗자리에 앉으려고 신경전을 벌인 까닭입니다.
‘저 사람은 나보다 못한데 어찌 저 자리에 앉아 있는가?’ 아마도 이러한 표정이 오갔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진리의 말씀을 남기십니다. “초대를 받거든 끝자리에 가서 앉아라.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살다 보면 낮추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포기해야 할 순간이 있습니다. 반드시 있습니다.
그런데 어정쩡하게 버티고 있는 이들을 숱하게 봅니다. 내려오면 많은 것이 해결되고 홀가분해질 텐데도
그러지를 못합니다. 왜 그럴까요?
자리에 대한 미련 때문입니다. 편한 자리일수록 더 머물고 싶어집니다.
높은 자리일수록 자신을 대단한 존재로 착각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내려오지 못하는 겁니다. 그러기에 주님께서는 자신을 낮출 줄 아는 사람이 되라고 하신 겁니다.
겸손만이 높은 자리의 유혹을 막아 줍니다.
예수님께서 어느 안식일에 바리사이들의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의 집에 가시어 음식을 잡수실 때 일이다.
그들이 예수님을 지켜보고 있는데,
예수님께서는 초대받은 이들이 윗자리를 고르는 모습을 바라보시며 그들에게 비유를 말씀하셨다.
“누가 너를 혼인 잔치에 초대하거든 윗자리에 앉지 마라.
너보다 귀한 이가 초대를 받았을 경우, 너와 그 사람을 초대한 이가 너에게 와서,
‘이분에게 자리를 내드리게.’ 할지도 모른다.
그러면 너는 부끄러워하며 끝자리로 물러앉게 될 것이다.
초대를 받거든 끝자리에 가서 앉아라.
그러면 너를 초대한 이가 너에게 와서,
‘여보게, 더 앞자리로 올라앉게.’ 할 것이다.
그때에 너는 함께 앉아 있는 모든 사람 앞에서 영광스럽게 될 것이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루카 14,1.7-11)
◆자신을 낮추면 더 형편없이 짓밟힐까 봐 근사한 옷을 차려 입고 큰소리로 외쳐대며
자신의 상품성을 극대화해야 살아남는 요즘 세상에서 예수님의 말씀은
그냥 듣기 좋은 말씀으로만 여겨진다.
사실 예수님의 생애는 그렇게 늘 낮은 곳만을 향했다.
하느님과 똑같은 분이 세상으로 내려오실 때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신음하던 가장 보잘것없는 나라
이스라엘을 선택하셨다.
또 수도 예루살렘 출신의 명문가 규수가 아니라 변방 갈릴래아 산골 처녀를 통해서 태어나신 그분은
편안한 침대가 아니라 마구간의 말 구유에 몸을 누이셨다.
머리 둘 곳조차 없이 사셨던 예수님은 사형수가 되어 십자가 위에서 참혹하게 돌아가셨다.
한마디로 가장 높이 계셨던 분이 이 세상의 가장 밑바닥까지 내려가신 것이다.
끊임없이 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은 수력발전소를 통해 엄청난 양의 전기를 생산해 낸다.
이 물처럼 더 낮은 곳을 찾아 끊임없이 아래로만 내려가셨던 그리스도의 삶에서 우리는
하느님의 전능하심을 체험하게 된다.
주님의 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길 때,
기쁨에 겨운 다윗 왕이 알몸을 드러내고 춤을 추자 왕비 미칼이 다윗을 비난한다.
그러나 다윗은 주님 앞에서라면 이보다 자신을 더 낮추고 더 천하게 될 것이라고 응답한다.
주님만 알아주시면 체면쯤이야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태도였다.(2사무 6,1-23 참조)
주님 앞의 이런 겸손이 다윗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이 되게 했다.
사람에게보다 하느님께 인정받을 수 있도록 낮은 곳으로 내려갈 수 있는 힘을 청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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